IT 제품 리뷰

[리뷰] Anbernic RG35XX H: 동에 번쩍 서에 번쩍

김대충_ 2024. 9. 12.
Anbernic RG35XX H (₩68,000)

 
나에게는 모바일 기기를 구매할 때 절대로 타협할 수 없는 3가지의 취향이 있다. 첫째는 예뻐야 한다는 것이고 둘째는 성능이 좋아야 한다는 것이며 셋째는 가벼워야 한다는 것임. 그래서 아직까지도 아이폰 13 미니를 버리지 못하고 있다. 예쁘고 성능 좋은데 가볍기 때문임..
 
이 기기 이전에 레트로이드 포켓 3 플러스를 썼다. 성능이 좋고 예뻤지만 235g으로 절대 가볍지는 않은 무게였음. 양손으로 들고 쓰는 기기니까 괜찮지 않을까 생각했는데 안 괜찮더라. 30분만 들고 있어도 손목이 아파서 게임을 하기가 어려웠다. 나는 바야흐로 늙고 병든 아재가 되어버린 것임..
 
아무튼 그래서 레트로이드 포켓은 중고로 팔아버렸고 다른 기기를 물색하기 시작했다. 게임을 좀 해보니까 나는 PSP 게임은 딱히 들고 다니면서 하고 싶지가 않더라고. 그래서 성능이 좋지만 무거운 기기들은 아예 선택지에서 제외해버렸다. 딱 SNES 수준까지 돌려주는 게임기 중 가장 예쁘고 가벼운 제품을 찾아다녔음.
 
그러다가 발견한 것이 엔버닉에서 나온 RG35XX H다. 뒤의 H는 Horizontal을 뜻하는 것임. H가 붙어있지 않은 그냥 RG35XX도 있는데, 이것은 닌텐도 게임보이와 비슷하게 생긴 세로형 기기다. 리뷰를 좀 찾아보니 가로형의 조작감이 더 낫다고 해서 가로형으로 구입함.

닌텐도 게임보이를 레퍼런스한 Anbernic RG35XX

RG35XX H는 무게가 180g으로 아주 가볍다. 손에 오랫동안 쥐고 있어도 부담이 없는 무게다. 레트로 핸드헬드 중 200g보다 적게 나가는 건 별로 없는데, 그 중에서 SNES가 렉 없이 돌아가는 기기는 내 기억에는 이것 밖에 없었음. 앞으로 한동안은 이것보다 무게 대비 성능비가 좋은 기기는 잘 안 나올 것 같다.
 
아이폰 13 미니의 무게가 140g인데, 손에 올려두었을 때는 체감상 큰 차이가 나지 않는다. 핸드폰처럼 세로로 잡고 한 손으로 조작해보면 확실히 13 미니보다 무겁다는 게 느껴지긴 하지만, 이 기기는 한 손으로 조작할 일이 전혀 없으므로 문제 없다.

색상 라인업은 총 3가지인데, 블랙을 제외하면 모두 투명 플라스틱을 이용함. 레트로이드 포켓 3 플러스를 구매할 때 SNES 색상으로 사지 못한 게 못내 아쉬웠기 때문에 그 색상이 있다면 그걸로 사려고 했다. 근데 안타깝게도 없음.. 나는 투명 플라스틱을 별로 안 좋아하기 때문에 어쩔 수 없이 블랙을 구매함..

버튼 구성 및 스펙은 위와 같다. 3.5인치 디스플레이를 채택했으며 OS는 리눅스다. 블루투스를 지원하기 때문에 외부 컨트롤러를 연결할 수 있고 HDMI 포트를 통해 큰 화면으로 즐길 수도 있다. 기본적으로 64GB SD카드가 꽂혀서 오는데, 성능은 딱히 좋지 않지만 아직까지 막 뻑나고 그런 적은 없음. 듀얼 SD카드를 지원하므로 TF2라고 적혀 있는 곳에 SD카드를 하나 더 꽂아서 확장할 수도 있다. 상단에 F라고 적혀있는 버튼이 있는데 펑션 버튼이다. 다른 버튼과 조합해서 리셋, 저장, 불러오기, 종료 등의 조작을 수행하는 버튼임. 사진에는 안 나와 있는데 LR 조이스틱은 L3, R3 입력도 지원함.
 
엔버닉은 하드웨어를 무지막지하게 많이 발매하는 회사라서 라인업이 아주 더러운데, 따라서 사후지원이 부실하고 찐빠에 대처를 잘 안 해준다는 평이 있다. 졸라 싸고 다양하게 이것저것을 만들어보고 문제가 있으면 다음 제품에서 개선한다는 마인드를 가진 회사임. 때문에 초창기 제품은 거의 베타 테스트 수준의 제품도 있었던 걸로 기억함.
 
하나의 제품을 오래오래 사용하고 싶어하는 사람들과는 최악의 궁합을 가진 회사임이 분명하지만, 어쨌거나 제품을 졸라게 많이 만들어왔기 때문에 나름대로 노하우는 많이 쌓을 수 있었고, 최선의 디자인으로 수렴진화 할 수 있었음. RG35XX H를 잡아보면 그게 좀 느껴지는 것이, 딱히 손에 쥐었을 때 흠잡을만한 부분이 없음. 파지했을 때의 감각이 아주 산뜻하고 모든 버튼이 적재적소에 배치되었다는 느낌이 듦.
 
모든 버튼에 클릭감이 있는데 기기 상단의 LR 버튼들은 기계식 키보드로 따지면 청축처럼 좀 더 클리키한 느낌이고, 나머지 버튼들은 갈축처럼 약간 택타일하고 뭉뚝한 느낌임. 레트로이드 포켓에 비하면 약간 더 쫀득한 느낌이 드는 버튼감인데, 직접 잡아보면 별로 호불호가 없을 것 같은 준수한 감각임.

다만 준수한 하드웨어가 무색하게 소프트웨어는 찐빠가 좀 있음. 쇼핑몰 사진 속 화면에 떠 있는 OS는 엔버닉의 순정 OS인데, 저 OS가 못생기고 만듦새가 덜떨어지기로 악명이 높음. 막 어디가 잘못됐다 이런 걸 콕 집어 얘기할 수는 없지만 아마 받아서 처음 켜보면 딱 느껴질 거라고 생각함. 조잡한 생김새와 이상한 UI를 보고 있으면 잘 만든 하드웨어가 아까울 지경임. 얘네는 하드웨어 디자인은 잘 뽑으면서 소프트웨어는 맨날 이러더라..
 
그래서 여러가지 커스텀 펌웨어를 유저들이 만들어서 배포하고 있다. 나의 경우 KNULLI라는 이름의 커스텀 펌웨어를 사용하고 있음. 레트로아크와 에뮬레이션 스테이션을 기반으로 만들어진 OS인데 생김새가 아주 예쁘고 기기 자체와도 잘 어울림. 이렇게 커스텀 OS를 써야만 비로소 기기가 완성이 된다는 점에서 엔버닉의 한계가 드러나는 것일지도 모르겠음. 장인정신을 좀 더 발휘하지 않는다면 영원히 2류 회사일 수 밖에 없다..

RG35XX H - KNULLI Wiki

Anbernic RG35XX H Overview Device CPU / Architecture Kernel GL driver Interface RG35XX H Allwinner H700 (ARM) Allwinner BSP 4.9.170 Mali G31 EmulationStation The RG35XX H distribution includes a bootloader, u-boot, and kernel in binary form extracted from

knulli.org

앞서 설명한 KNULLI OS는 위 링크에서 다운로드 및 설치할 수 있음. 영어의 압박이 약간 있긴 한데 비디오 가이드까지 제공하므로 차근차근 따라하면 별로 어렵지는 않을 것임. 참고로 KNULLI 말고 다른 OS들도 많이 있음. 아래 영상의 37분 40초부터 보면 RG35XX H에 설치 가능한 다른 OS의 소개가 나옴. OS마다 일장일단이 있으므로 잘 보고 결정하시면 되겠음.
 

나의 경우 KNULLI를 설치하고 Syncthing이라는 세이브 파일 동기화 기능까지 활용해서 PC와 RG35XX의 세이브 데이터를 동기화시키고 있는데.. OS 설치는 쉬웠지만 Syncthing 셋업에는 고생을 좀 해야 했음. 아무튼 가능은 하므로 혹시 Syncthing을 이 기기로 돌릴 생각이 있는 사람들은 힘을 내시라.. 이 셋업을 어떻게 하는지는 나중에 기회가 되면 따로 적어보도록 하겠음..
 

글로 담기 어려운 게임 구동 장면이나 다른 세세한 리뷰는 위 영상으로 갈음하려고 함.. Retro Handheld Corps라는 양덕 형님 채널인데 화면도 깔끔하고 리뷰도 알차서 좋아하는 채널임.. 영어로 설명하지만 어휘의 수준이 그렇게 어렵지는 않으므로 관심 있는 사람들은 한번씩 보는 것도 나쁘지 않을 것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