펜타포트 다녀옴.. 이번에 라인업이 형편없다는 말이 많았는데 나는 이제 그지 같은 라인업도 얼추 즐겁게 볼 수 있다는 근자감이 있었기 때문에 그냥 막무가내로 예매함.. 근데 주차장에서 내리고 날씨가 너무 더워서 그때는 좀 좆됐다 싶었음..
디폴트
요즘 인디밴드들의 기타 브랜드는 사실상 펜더가 점령을 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닌데, 여기는 특이하게도 기타 2대가 다 레스폴이었음.. 시작부터 빡센 노래 해줘서 좋았다..
리드 기타 양반 앞섶을 풀어헤치고 유두를 슬쩍슬쩍 노출하며 기타를 치는 것이 인상깊었음.. 보컬 형도 상당히 파인 나시를 입고 나왔는데.. 저런 옷 잘 안 입을 것 같은 관상으로 그런 룩을 해서 나오니까 재미있었음..
보컬이 첫 곡 중간에 솔로를 했는데 볼륨이 작아서 아예 안 들리는 현상이 발생함. 근데 솔로 끝날 때까지 엔지니어가 기타를 안 키워줌.. 뭐하러 앉아있냐 그럴거면..
안타깝게도 첫 곡만 빡세고 다음 곡은 전부 다 말랑말랑한 곡이었다. 근데 그럼 레스폴 왜 쓰는거지? 아무튼 나는 말랑말랑한 곡도 좋아하지만 날씨가 더우니까 아무래도 빡센 게 듣고 싶어지는 거 같음.. 이후로도 셋리스트 색이 그쪽인거 같아서 때려치고 케이브 보러 감..
KAVE
펜타포트 원래 잠자리 이렇게 많음? 야외 나오니까 잠자리가 막 떼거지로 날아다니고 있었음..
‘시작’으로 유명한 가호가 하는 밴드라고 함.. 개인적으로 별로 좋아하는 노래는 아니지만 볼 게 없으니 어쩔 수 없다..
보컬이 졸라 각기춤을 추면서 노래를 불렀는데 졸라 기괴한 동시에 몬가 신인의 파이팅이 느껴져서 좋았다..
구성이 특이한데, 보컬/기타/베이스/드럼에 건반이랑 DJ가 끼어있음. 마치 린킨 파크를 생각나게 하는 구성인데 음악색은 락이랑 클럽 사운드가 결합된 뭐 그런 느낌임.. 덥스텝마냥 쾅쾅 밟아제끼는 쏘우투스 베이스 위에 기타 솔로랑 간드러지는 보컬이 올라가는 구성이 대부분인데 근데 그러다가 갑자기 집시 재즈스러운 프레이즈가 등장하기도 함. 혼란스럽군..
밴드가 무대에서 막 필요 이상으로 신나하면 약간 보는 재미가 떨어지는 거 같음.. 관객이 열광하고 퍼포머는 시크한 게 옳지 않나 싶다.. 보다가 보컬 양반이 하도 행복해해서 못 보겠어서 때려치고 카디 보러 감..
카디
보컬 언니 올드보이 경호원 닮음..
아.. 처음 보는 밴드인데 졸라 좋았다.. 이거는 뛰어노느라 정신 없었어서 기록할 게 별로 없다. 역시 음악은 잘하는 놈이 잘하는 게 맞는 것 같다. 곡도 좋고 퍼포먼스도 좋고 멘트도 적절하게 안 늘어지게 흥 돋구는 정도로 잘 쳤다. 이거 보고 나니까 앞에 두 밴드가 별로인 것처럼 느껴졌다.. 집에 가서 카디 들어봐야지..
아마도이자람밴드
데뷔한지 10년 된 밴드고 이런저런 페스티벌 라인업에서 이름 많이 봤는데 노래 들어본 건 이번이 처음이었다. 근데 좋네... 인생 손해봄..
보컬 언니 기타는 형편없게 치시는데 노래를 너무 잘 해서 그게 별로 단점으로 안 느껴질 정도다. 찾아보니까 뭐 어릴 때 판소리를 하셨다고 함. 고음에서 찢어지는 걸걸한 소리로 쫙 뻗어주시는데 이게 듣는 쾌감이 오졌다.
다만 점심시간이고 나는 배가 고팠기 때문에 + 무더운 날씨에는 안 어울리는 장르의 밴드였기 때문에 반쯤 보고 김치말이국수 먹으러 감.
김치말이국수
이것은 따로 특기할 필요가 있다. 김치말이국수는 펜타의 헤드라이너가 맞다..
캐치더영
날씨가 너무 더웠기 때문에 유일한 실내 스테이지인 글로벌 스테이지로 가서 에어컨을 좀 쐬기로 함.
캐치더영이라는 실음과 출신 아이돌 밴드가 공연 중이었는데... 듣기에는 나쁘지 않은 노래였지만 대놓고 팝 노선을 타기엔 QWER보다 파괴력이 약했다. 그치만 잘생긴 보이밴드답게 코어 팬들이 많아보였으므로 이들은 잘해나갈 수 있을 것이다..
램넌츠 오브 더 폴른
사실 평소에는 메탈을 거의 듣지 않지만 여름 페스티벌에 오면 한번씩은 들어줘야 한다고 봄. 왜냐하면 첫째 개뚜들겨뿌수는 음악을 들어줘야 더위가 좀 덜 성가시기 때문이고 둘째 메탈 공연에는 대부분 슬램이나 월오브데스가 동반되기 때문에 의무실이 부족한 페스티벌 측에서 워터캐논을 아낌없이 뿌려주기 때문임.. 물리적으로 덜 더워질 수 있는 것이다.
나는 리허설 시간에 갔기 때문에 거의 맨 앞에서 공연을 볼 수 있었고, 역시 메인 스피커의 영향력 밖으로 벗어난 공연 음향은 좋을수가 없다는 사실을 재확인함. 프론트필 스피커 사이즈가 너무 작아서 이건 뭐 악기 소리가 거의 분간도 안됨.. 감상이 목적이라면 콘솔 앞에서 보는 것이 최선이겠다..
그치만 공연은 개쩔어줬다. 보컬 아저씨 진짜 테스토스테론 충만하게 생겨서 그로울링을 난사해주시는데 아주 흡족했음. 가사 하나도 안 들리고 기타가 리프를 치는지 솔로를 치는지도 모르겠지만 뭐 어떻습니까... 걍 대충 헤드뱅잉 갈겨주고 슬램 때려주고 맥주 먹으러 가면 되는 것임..
QWER
나는 스레드에다가 QWER을 비호하는 글을 몇 번인가 적었는데.. 사실 말은 그렇게 해도 진짜 QWER의 무대가 펜타포트에서 흥할지는 별로 확신이 없었다.
근데 이제는 내 촉을 좀 인정해도 될 거 같음.. 왜냐햐면 지금 이 글을 QWER 웨이팅하면서 쓰고 있는데, QWER이 공연하는 글로벌 스테이지 대기줄이 존나게 길게 생겼기 때문임.. 진짜 구라 안치고 줄이 한 400m는 서있는듯.. 나는 공연 한 시간 전에 줄을 섰는데도 30분 동안 50m 밖에 움직이지 못했음. 이래서는 공연 못 볼 거 같은데...
사실 QWER이 보고 싶은 이유는 잘해도 뉴스 못해도 뉴스가 될 것 같기 때문이었음. 이번 페스티벌의 뜨거운 감자였으니까... 역사의 현장에 있어보고 싶은 그런 마음이 들었다.
하 시발 결국 못 보고 밖에 스크린으로만 봄. 시발 펜타포트 운영진은 오늘 줄 보고 QWER을 야외 스테이지에 배치하지 않은 것을 반드시 후회할 것이라고 봄. 그 정도로 관객 동원력 개미쳤음..
사실 QWER은 이것보다 훨씬 큰 대학교 행사 무대도 해보고 했으니까 생각보다 오늘 무대에 별 감흥이 없었을 수도 있겠음. 스크린으로만 봐서 확신을 못하겠는데 그냥 평소에 하던대로 잘 하고 내려간듯.
뭐 물론 MR 떡칠해서 기타와 베이스의 실력을 열심히 포장했겠지만 그치만 오늘 와보니까 백킹 트랙을 바르지 않는 밴드가 생각보다 별로 없음. 어느샌가 밴드 라이브에 백킹 트랙을 바르는 게 뉴 스탠다드가 되어가고 있는데 나는 이게 도무지 마음에 들지 않는다..
브로콜리 너마저
새로 들어온 기타 양반이 과연 향기의 빈자리를 채워줄 수 있을 것인가? 이게 오늘 공연의 핵심이었는데, 결론만 말하면 No인듯.. 기타 톤도 연주도 라인 메이킹도 향기보다 두 수 쯤 아래였다..
근데 딱히 기타 잘못만은 아닌 것 같은게, 2집 이후의 레퍼토리들이 다 너무 구렸음. 3집/4집의 넘버들이 나올 때마다 관중들 텐션이 떨어지는 것이 보일 정도였으니..
게다가 윤덕원 이 아저씨가 정신이 나갔는지 ‘졸업’에다가 웬 뚱보 아저씨를 피처링으로 불러서 ‘이 미친 세상에’를 샤우팅하도록 시키는 만행을 저질러버림.. 그나마 1~2집 덕분에 지금까지 먹고 살고 있으면서 그 좋은 노래들까지 굳이굳이 사족으로 조져놓는 것이 나는 잘 이해가 되지 않음..
이제 나이도 먹었고 전성기도 지났고 현생에 치일 시기니까 곡빨이 구려지는 것까지는 십분 이해하겠다만 좋은 추억까지 망치지는 말았으면 좋겠다고 생각함..
toe
매쓰 록은 노래를 아예 모르는 상태로 처음 들어도 어느 정도는 즐겁게 들을 수 있는 것 같음. 귀로 듣는 스도쿠랄까 뭐 그런 느낌임..
특이하게 무대가 졸라 넓은데도 불구하고 드럼과 앰프를 마치 합주실처럼 가운데로 옹기종기 모아놓음. 뭔가 페스티벌의 모니터 시스템을 믿지 못하고 우리는 다이렉트 사운드로 모니터를 하겠다 이런 의도 내지는 고집이 느껴졌음.. 하긴 내가 예전에 했던 대부분의 공연에서도 모니터 스피커로 뽑히는 기타 사운드에 만족했던 적은 거의 없었던 것 같긴 함..
기타리스트 두 명 다 마샬 앰프를 썼음.. 이건 좀 예상 외였는데, 클린톤이 중요한 음악이니까 당연히 펜더나 복스 같은 클린톤으로 유명한 앰프를 사용할거라고 생각했음.. 근데 마샬임에도 불구하고 클린톤 엄청 예쁘게 뽑히더라. 앰프는 죄가 없다..
건반은 PA 직결을 안하고 롤랜드 JC-120을 통해서 뽑은 다음에 마이킹을 함. 이것도 졸라 신기했는데 나는 큰 무대에서 건반이 앰프를 따로 쓰는 걸 이번에 처음 봤음.. 하여간 신기한 세팅을 쓰는 밴드였다..
라이브는 진짜 개쩔게 해줬음. 리버스 딜레이라든지 딜레이 페달의 셀프 오실레이션이라든지 아무튼 듣기에 신기하고 구현하기 번거로운 소리들이 레퍼토리 전반에 많이 포함되어 있는데, 재즈마스터 치는 기타 양반이 그 소리들을 죄다 라이브로 구현해 냄.. 사실 어지간한 밴드였으면 백킹 트랙으로 깔아버릴 수도 있는건데 짜세 오졌음..
보면서 웃겼던게, 물이나 맥주, 위스키 같은 액체류들을 졸라 마시면서 공연을 하는데 그것들을 죄다 앰프 위에 올려놓음. 하나라도 쏟아지면 공연 조질텐데 뭐 안 쏟을 자신이 있었나봄. 한국 합주실이었으면 사장님들이 존나 째려봤을텐데 뭔가 자기 앰프니까 그냥 꼴리는 대로 하는 거 같아서 웃겼음.
새소년
새소년 별로 안 좋아하는데 단독 타임이라 볼 게 없어서 그냥 감. 파도에 슬램이나 해야지 하고 갔는데 시바 시작하자마자 파도를 때리더라.. 토 공연 끝나자마자 시작했기 때문에 슬램은 못했고 대신 황소윤이 인터루드에서 브릿지 물고 치명적인 척 하는 건 라이브로 볼 수 있었음..
여기도 브로콜리 너마저랑 비슷하게 관중들 사이에서 구곡/신곡의 온도차가 꽤 있었음. 후반에는 미발매 신곡들을 꽤 많이 공연했는데 이것들은 블루지한 색채는 많이 덜해졌지만 듣기에 나쁘지 않았다.
근데 멘트가.. 졸라 별로였음.. 그러니까 이것은 음악적 재능과는 별개로 그냥 사람 자체가 어리고 순진한 것이 티가 난다고 해야 하나.. 어둠의 백예린 같은 느낌이었고 별로 중요한 얘기도 아니면서 쓸데없는 말을 줄줄줄 함.. 덕분에 오버타임 나서 김고든 누님의 공연이랑 사운드가 겹치는 사태가 벌어짐..
말은 적게 하고 음악이나 많이 했으면 좋겠다 싶음..
턴스타일
드디어 헤드라이너다.. 노래도 모르는 밴드고 무엇보다 하루 종일 땡볕에 공연 보니까 너무 힘들어서 이건 걍 피크닉존에 방석 깔고 대충 봐야지 했는데.. 시발 장르가 너무 슬램에 최적화라 그럴 수가 없었음. 주머니에 핸드폰만 넣고 슬램하러 뛰쳐나감.
몇 달 전에 인터넷에서 ‘요즘 슬램, 모슁, 월오브데스 문화가 너무 순한맛이라 마음에 안 든다’며 슬퍼하는 글을 봤는데 그 양반이 어제 턴스타일 공연에 있었다면 아마 존나 만족하지 않았을까.. 진짜 뭔 노래가 이 때 벌려 이 때 슬램해 이런 식으로 슬램에 최적화되어 있는데 심지어 곡이 끝나지도 않음.. 열심히 뛰어놀다가 여기서 더 놀면 진짜 뒤질 거 같아서 피크닉 존으로 돌아감..
음악만 듣기에는 관심 있는 밴드도 아니고 해서 걍 폰이나 하고 있었는데, 사람들이 갑자기 소리를 지르길래 무대를 봤더니 관중들이 막 무대에 난입하고 있었음.. 나는 뭐 폭동이라도 일어났나 했는데 알고보니 이 밴드는 매번 공연 마무리를 이렇게 한다고 함.. 이 때 피크닉존으로 돌아온 거 졸라 후회했음.. 시발 펜타 메인 무대 올라가볼 수 있는 절호의 찬스였는데 그깟 생명의 위협이 뭐라고...
1일차 소감
혹시나 내년에 올 사람을 위해 조언하자면.. 더위 대책은 아무리 강력하게 해도 모자라지 않음.. 나의 경우 쿨토시 + 목 앞뒤를 다 가려주는 모자 + 긴바지 + 긴양말로 중무장을 함.. 2일차에는 양산도 썼음.. 이렇게까지 안 하면 어떻게 되는지는 아래 사진을 보면 알 수 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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